청송 박석두씨가 혁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80년부터이다. 그의 전공은 원래 인두로 그림을 그리는 낙화(烙畫)였다. 청송에게 혁필을 전수한 스승 팔산 홍지성 선생은 팔십 고령을 맞아 은퇴한 분으로 혁필 부문 기능 보유자로 지정 받고 공예대전에서 입상을 한 대가였다. 그는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혁필을 썼으며 잔칫집을 방문하여 만수무강 등 축문을 써주며 한껏 잔치를 기쁘게 해주었다. 전국 팔도를 떠돌던 그에겐 그만의 낭만과 애환이 있었다.

“다른 예술행위와 달리 혁필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즐기는 예술입니다.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그 그림과 함께 빠져들면서 서로의 교감이 통하는 것이죠. 그림을 그리면서 그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를 설명해주면 대중들은 흥이 솟는 몸짓으로 붓끝을 바라보며 신비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청송의 말대로 붓끝을 돌려댈 때 더욱 그림에 빠져들게 된다. 스승이 전국 팔도의 장을 돌며 혁필을 그렸듯이 청송은 유럽 여러 도시의 박람회장을 돌면서 날렵한 붓 놀림으로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지 어언 10여년이 넘는다.

그가 그리는 혁필은 스승의 것과 구분되는 차이점이 있다. 우선 색상부터가 더욱 화려하다. 그는 무슨 색이든 미적 감각에 맞추고 배색하고 그림 속에 조화롭게 나타낸다. 그리고 그는 유럽을 돌면서 기존의 제한된 한자말에서 벗어나 영문자도 혁필로 그려낸다. 유럽에 최초로 혁필을 소개하고 왕성하게 활동한 지 10여년 동안 많은 외국인들을 매료시켰는데, 그 중에는 혁필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오겠다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청송은 우리의 순수 예술인 혁필에 우리 민족의 낭만과 흥을 가득 담아 유럽에 널리 알리고 있다.

스위스 연방 대통령 Flavio Cotti씨를 위해 혁필을 써주는 청송

혁필의 유래

혁필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민화의 유산으로 비백에서 출발했다 한다. 비백이란 희게 난다는 뜻으로 붓으로 글씨를 쓸 때 붓을 빨리 휘두르면 먹물이 채 묻지 않고 써진 부분을 말한다. 서예에서는 이런 부분이 많으면 잘못 써진 글자라 하는데 혁필에서는 이런 부분을 살려서 써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만큼 혁필은 미술적인 면을 가미한 서예 형태라 할 수 있다.

13세기경 고려시대부터 유래했다는 설이 있지만 남아있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추적 가능한 유래는 18세기라 할 수 있다. “경도잡지”라는 문헌에 의하면 유덕공(劉德公)이라는 학자가 처음으로 비백의 형태로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처음에는 버드나무가지의 끝을 이즈러뜨려 썼으며 사용하는 글자도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등 여덟 자를 도안 해 만든 팔자도를 주로 썼다고 하는데 점과 획이 멋대로 뛰놀아 물고기, 게, 새우, 제비의 형상을 이루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시 성행하던 문인화의 영향으로 먹으로 만 쓰던 것이 예술적 감수성이 보태지면서 색깔도 차츰 다양해지게 되었으며 여느 민화들과 마찬가지로 학, 거북, 나비, 잉어, 용, 봉황, 대, 소나무 등이 글자의 모양과 뜻에 어울려 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윤리나 도덕에 관한 교훈적인 내용을 주로 쓰고 그려서 글자를 잘 모르는 일반 서민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 해주는 역할을 했지요. 못 지(池)자에는 물고기를, 그리고 오얏나무 이(李)자에는 오얏나무를 그려넣어 글자의 뜻을 설명해주고 글자와 그림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한자가 원래 상형문자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만큼 서로 잘 조화를 이루는 셈이죠.”

청송이 들려주는 혁필의 유래는 이렇듯 차츰 서민 대중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오며 발달해왔음을 알게 해준다.

청송의 Virtual Gallery를 방문하여 작품을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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